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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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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이다. / The eleventh and current President of South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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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Biography

KOR: 박근혜(朴槿惠, 1952년 2월 2일 ~ )는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통령이다.

1952년 2월 2일 박정희와 육영수의 사이에서 태어났다. 1963년 부친 박정희의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에서 성장하였고, 1970년 서강대학교에 입학하여 전자공학을 전공하였다. 1974년 모친 사후부터 1979년 10·26 사건 이전까지 퍼스트 레이디의 직무를 수행하였고, 10·26 사건 이후 청와대에서 나와 육영재단 이사장과 정수장학회 이사장 등을 지냈다. 1998년 정계에 입문하여 그해 4월 2일에 실시된 재보궐선거에서 제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었고 이후 제19대까지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한나라당의 부총재와 대표최고위원을 역임하였으며, 2007년 한나라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에 출마하였지만 이명박에게 석패하였다. 이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을 지내면서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를 승리로 이끌었고, 새누리당의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어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민주통합당의 대통령 후보 문재인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2013년 2월 25일,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며,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자 1987년 대한민국 헌법 개정 이후 최초의 과반 득표 대통령, 최초의 이공계 출신 대통령, 독신 대통령, 부녀 대통령으로 기록되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선거 - 새누리당 후보 경선과 선출

박근혜는 2010년 7월 10일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하였다. 2012년 7월 5일 이상일 캠프 대변인은 오전 10시에 영등포 타임스퀘어 광장에서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기로 정하였다고 브리핑을 통하여 밝혔다. 이 대변인은 "각계각층 국민들이 다니는 열린 공간이라는 점이 고려되었다"고 설명하였다. 캠프명은 '국민행복캠프'로 정하였다고 이 대변인은 덧붙였다.

박근혜는 2012년 8월 20일 새누리당 전당 대회에서 12월 19일 18대 대통령 선거에 나설 새누리당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의 득표율은 전체 유효투표의 83.97%인 8만 6천 589표로 지난 2002년 경선 당시 이회창 후보가 얻은 68%인 기존의 최고 기록을 갱신하였으나 경선 투표율이 41%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였다. 대한민국 정당 역사상 유력 정당의 첫 여성 후보이자 전직 대통령의 자녀가 대선 후보가 되는 첫 사례이기도 하다. 한편 박근혜는 2002년 한나라당 제16대 대선 후보 경선 출마 선언 10년 후에 대선 후보로 선출되는데 성공하였다.

 

전태일재단 방문 시도

2012년 8월 28일 박근혜는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고 했지만 유족과 노동자들의 거부와 반대로 무산되었다. 이를 두고 박근혜의 진정성에 대한 의심과 비판의 목소리들이 잇따랐다.

전태일의 여동생이자 민주통합당 국회의원인 전순옥은 진정으로 전태일 정신을 생각한다면 쌍용차나 용산참사 희생자 등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먼저 찾았어야 한다고 말하고, 이른바 국민대통합에 대해서도, 정책적으로 접근을 하거나 현안이 일어나는 현장을 먼저 찾아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를 이야기하며 희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전 의원은 현재의 진실은 미래에 대한 지향과 과거의 삶이 일치할 때 빛을 발하는 것이라며 5·16 쿠데타와 유신, 군사 독재에서 지금의 정수장학회까지 과거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다면 지금의 말과 행동은 그 진실을 의심받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하였다.

전태일의 남동생 전태삼도 박근혜는 22명의 쌍용차 사망 노동자들의 분향소부터 방문하였어야 한다면서 새누리당사 앞에서 20일 넘게 대책을 요구하는 쌍용차 해고 노조원들의 요구엔 묵묵부답이면서 전태일 재단을 방문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비판하였다.

진중권 교수 역시 박근혜의 방문 시도에 대하여 진정으로 소통과 화해를 하겠다면 지금 눈앞에서 고통 받고 있는 노동자들을 찾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고통은 외면한 채 전태일재단을 방문하려는 것은 쌍용차는 ‘현재’에 수행해야 할 책임을 의미하는 반면, 전태일 재단은 ‘과거’로 면피할 소재라 보기 때문이라면서, 이는 노동자의 고통까지 정치수단화 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비윤리적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쌍용자동차대책 특별위원회 역시, 새누리당사 앞에서 박근혜 후보가 나설 것을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을 먼저 만날 것을 촉구했다. 같은 당 은수미 의원도, 최저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르는 박근혜 후보의 방문에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면서, 정리해고와 용역폭력 등에 고통 받는 수많은 지금의 전태일이 겪고 있는 문제에 답하는 것이 먼저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새누리당의 이상일 대변인은 방문이 무산된 데 대해, "박 후보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아무리 방해를 하고 장막을 친다 해도 국민을 통합하겠다는 박 후보의 행보를 막지 못할 것"이라며 "국민을 분열시켜 계층간, 세대간, 지역간 갈등을 조장하는 세력을 반드시 물리치고 국민대통합의 '100%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혁당 사건에 관한 입장에 대한 논란

박근혜는 2012년 9월 10일 《손석희의 시선집중》과의 인터뷰에서 인민혁명당 사건에 대해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면서 그 부분에 대해서도 또 앞으로의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러한 입장에 대하여 언론과 정치권을 비롯한 각계로부터 많은 비판이 제기되었다. 박 후보의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느냐는 발언은 헌정절차가 정지된 유신 때 이뤄진 유죄 판결과 민주화 이후 사법부가 무죄로 교정한 판결의 효력을 동일시한 것이며, 이미 역사적,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사안까지 수용하지 않는 것으로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경향신문과 한겨레, 한국일보 등의 언론들은 사설을 통하여 재심으로 유신 당시의 대법원 판결은 취소되었으며 "지금 이 순간 인혁당 사건이 무죄라는 점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법적인 사실"이라는 점을 지적하였다. 특히, 한국일보는 사설에서, "사실상의 헌법중단 상태인 유신 치하의 원판결과 민주화 이후의 재심 판결에 똑같이 '정치 상황'이란 잣대를 들이댄 결과라면 실로 심각하다"면서 그럴 경우 "대한민국의 사법절차, 나아가 헌정질서에 대한 근본적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광주광역시의 시민단체와 법조계는 박근혜 후보의 발언이 사법부를 부정하는 것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전국 11개 로스쿨의 인권법학회 학생들도 성명을 통해 박근혜의 발언은 역사인식의 심각한 결여와 법체계에 대한 무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했다.

야당들도 박근혜 후보의 발언을 일제히 비판하였다.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2007년 재심을 통해 무죄와 국가배상이 선고되고 사법부가 사죄까지 한 점을 지적하며, 박근혜 후보의 발언은 사법부와 유족을 모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사과를 요구했으며, 같은 당의 이해찬 대표 역시, 판결은 하나라는 점을 지적하고, 박 후보의 발언이 대법원에 대한 모독이라고 주장했다. 그밖에 유인태, 박지원, 박영선 의원 등도 "사법부를 무시한 황제적 발언", "일본 극우파들보다 더한 것", "헌정질서를 무시하는 초사법적인 발언"이라고 비판했다. 진보신당 역시 박근혜 후보의 태도에 대해 자신에게 불리한 문제는 에둘러 말하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보수 정치인들의 구태라고 비판했다.

이러한 비판이 제기되자, 박근혜 후보는 다음 날 대법원 판결은 존중한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당시 조직에 몸담았던 사람들의 증언까지 감안해서 역사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하지만 이러한 발언에 대해서는 "사실관계마저 호도"한다거나 "현대사에 대한 무지를 드러냈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박근혜 후보가 말하는 증언들이란, 박범진과 안병직 등의 증언을 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이들의 증언은 1964년의 1차 인혁당 사건에 대한 증언들로, 손석희 교수가 방송에서 질문한 유신 시절의 이른바 2차 인혁당 사건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다.

2012년 9월 12일 인혁당 사건 유족들은 새누리당 앞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이미 박 후보는 2005년에 국정원이 인혁당 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조사결과를 발표할때도 '한 마디로 가치가 없는 것이며, 모함'이라고 발언한 바 있다"며 "사람이 억울하게 8명이나 사형당한 사건을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고 말하는 박 후보는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조차 있는가. 입이 있으면 대답을 해라"고 비난했다.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위원회 위원장이었던 안병욱 교수는, 박 후보는 사실관계 가운데 법원의 재심 판결이나 과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처럼 공신력 있는 부분은 무시하고, 공신력이 없어 신뢰가 가지 않는 이야기에 무게를 싣는다면서, 이는 상대를 설득해서 믿도록 해주는 방식은 아니라고 말했다.

당시 인혁당 사건 피고인들의 변호를 맡았다가 반공법 위반으로 구속되었던 한승헌 변호사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두 개의 판결’이라는 말은 당시 사건의 날조과정이나 재판의 허구성에 대해서 정확히 모르고 하는 말 같습니다. 재심 무죄 판결 이상의 역사적 판단이 있을 수 없다고 봐요. 막연한 도피처처럼 역사의 판단이라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되는 겁니다.”

한편, 보수언론인 조선일보 역시 사설을 통해, 박정희 시대에 대해서는 긍정적 평가와 부정적 평가가 엇갈리지만, 2차 인혁당 사건의 경우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될 수 없는 어둠의 역사에 속한다는 것이 일반 국민의 공감대라면서, 반면 박 후보의 유신관은 박정희식 유신관에 바탕을 두고 있는데, 대통령 후보의 유신에 대한 입장은 아버지와 딸이라는 개인사를 뛰어넘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박근혜 후보의 인혁당 사건에 대한 발언에 대해 각계 각층으로부터 비판이 잇따르자, 2012년 9월 24일, 박근혜 후보는 5.16과 유신, 인혁당 사건 등의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였다. 이에 대하여 인혁당을 "민혁당"이라고 잘못 말한 것, 사과 후 기자들의 질문을 일절 받지 않은 것 등을 지적하며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하는 반응들이 있었다. 유족들은 진정성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 정성호 대변인은 평가한다고 하면서도, 진정성을 확인할 수 있는 후속 조치를 요구하였으며, 안철수 후보 등은 필요한 일이었다고 평가하였다.

 

비리 전력자와 '철새 정치인' 영입에 대한 논란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는 이른바 국민 대통합을 명분으로 다양한 인사들을 영입하였다. 하지만 이들 영입 인사들의 전력에 관해, 그들이 비리 전력자이거나 철새 정치인이라는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박근혜 캠프의 국민대통합위원장인 김종인은 1993년 동화은행에서 2억여 원을 뇌물로 받아서 의원직을 상실하고 2년 징역을 산 일이 있다는 점이 논란이 되었다. 한광옥은 나라종금으로부터 퇴출 무마 청탁과 함께 금품을 수수한 혐의로 2005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비리인사 영입은 당 안팎으로부터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전여옥은 2011년 영입 당시 김종인의 비리 전력을 지적하며 비판했고, 안대희는 2012년 10월 8일 한광옥이 국민대통합위원장에 임명될 경우 자신이 맡고 있는 정치쇄신위원장직을 사퇴하겠다는 기자 회견을 했다. 중앙일보의 김진 논설위원은 칼럼을 통하여 재벌과 은행의 투명경영을 유도해야 할 청와대 경제수석의 자리에 있으면서 오히려 그들로부터 뇌물을 받은 것은 중대한 일이라면서, 그런 김종인을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한 것은 "국민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비판하고, "이게 박근혜의 원칙인가"라고 물었다.

박근혜 후보의 벤처특보로 영입된 장흥순은 자신이 운영하는 회사의 적자를 감추기 위해 700억 원대의 분식회계를 했다가 구속, 기소되어 2005년 유죄 판결을 받았던 전력이 있어서 당 안팎에서 논란이 일었다. 국민대통합위원회 위원으로 영입된 김규옥 광주시민단체총연합회 대표는 2001년 1월부터 2006년 말까지 총 149차례에 걸쳐 노인무료급식 보조금 1억 7000여만 원을 자신의 생활비 등으로 사용해 업무상 횡령으로 기소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한편 과거 동교동계와 상도동계에 속했던 일부 인사들이 2012년 10월 15일 새누리당사에서 기자 회견을 열고 자신들은 과거 유신 체제에 맞섰으나 국민대통합을 위해 박근혜 후보 지지를 결심했다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이들의 과거 전력을 보면, 사실은 당적을 매우 빈번하게 옮겼던 이른바 철새 정치인이거나 과거에 이미 한나라당에서 활동하였던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정치적 쇼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날 회견에 참여한 안동선 전 의원은 2002년 새천년민주당을 탈당, 자유민주연합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2004년 1월 새천년민주당으로 복당했지만, 2007년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다시 탈당해 이회창 후보 지지 선언을 하고 자유선진당에 입당하였다. 이윤수 전 의원도 2002년 안동선과 함께 탈당했고, 2007년 제17대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후보 지지에도 동참하였다. 송천영 전 의원은 1992년 민주당을 탈당, 국민신당 창당에 참여했다가 그해 11월에는 민주자유당에 입당하였으며, 1997년에는 이회창 후보 불가론을 주장하며 신한국당을 탈당하였다. 그 뒤 2000년에는 민주당에 공천 신청을 했고, 2002년 12월엔 이인제를 따라 민주당을 다시 탈당해 자민련에 입당하였다. 송 전 의원은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 때는 다시 한나라당 대전시당 고문직을 맡아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하였다. 송 전 의원은 또한 2007년 강창희에 게 불법 정치자금 3000만 원을 건넸다가 돌려받은 혐의로 기소돼 징역 1년과 추징금 3000만 원을 선고받고 구속됐던 전력도 있다. 이 밖에 이날 회견을 한 조한천, 이희규, 반형식 전 의원 등은 지난 2004년 혹은 2008년 총선에서 이미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했던 인사들이었다.

이들 영입 인사들은 이날 기자 회견에서 "우리는 박정희 대통령과는 각을 세워 치열하게 싸웠지만, 그 딸인 박근혜 후보를 지지하는 고심 어린 결단을 꼭 알아달라"며 "이번 결심을 하는데 정말 고심이 많았다."라고 하였으며, 김무성은 이를 두고 "감동의 정치"라고 말했다.

2012년 10월 25일에 있었던 이인제의 입당도 이른바 철새 영입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일보 사설은, 국민대통합이라는 명분에도 불구하고, 득표에 도움이 된다면 전력을 따지지 않고 영입하는 것은 새누리당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는 등의 역효과를 낼 수 있다고 비판했다.

 

타임 아시아판 표지 모델

2012년 12월 박근혜는 '독재자의 딸'이라는 뜻의 'The Strongman's daughter'라는 기사 제목과 함께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의 2012년 12월 17일자 아시아판 표지 모델로 선정되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가 소속된 정당인 새누리당은 2012년 12월 7일 'The Strongman's daughter'이란 기사 제목이 '강력한 지도자의 딸'이라고 보도자료를 발표하였다. 이후 타임은 'The Strongman's daughter'의 인터넷판 기사 제목을 '독재자의 딸'이라는 뜻의 'The Dictator's Daughter'으로 수정하였다.

 

당선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하면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선언하며 배수진을 친 박근혜는 2012년 12월 10일 국회의원직을 사퇴하였다. 유력한 무소속 후보였던 안철수의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지지 유세로 고비를 겪었으나 박근혜는 2012년 12월 19일 제18대 대통령 선거에서 1577만 3128표를 득표하여 문재인을 누르고 당선되었다. 박근혜의 임기는 2013년 2월 25일부터 2018년 2월 24일까지다.

 

출처

 

 

ENG: Park Geun-hye (born 2 February 1952) is the eleventh and current President of South Korea. She is the first woman to be elected as President in South Korea, and is serving the 18th presidential term. Prior to her presidency, she was the chairwoman of the conservative Grand National Party (GNP) between 2004 and 2006 and between 2011 and 2012 (the GNP changed its name to "Saenuri Party" in February 2012). Park was also a member of the Korean National Assembly, and had served four consecutive parliamentary terms as a constituency representative between 1998 and 2012; starting her fifth term as a proportional representative from June 2012. Her father was Park Chung-hee, President of South Korea from 1963 to 1979. She is generally considered to be one of the most influential politicians in Korea since the presidencies of the two Kims: Kim Young-sam and Kim Dae-jung.

 

Early life and education

Park was born on 2 February 1952, in Samdeok-dong of Jung-gu, Daegu, as the first child of Park Chung-hee, the 3rd president of South Korea who served between 1963 and 1979, and Yuk Young-soo. She has a younger brother, Park Ji-man, and a younger sister, Park Seoyeong. Park has never been married.

In 1953, her family moved to Seoul and she graduated from Seoul's Jangchung Elementary School and Sungshim (literal: Sacred Heart) Girls' Middle & High School in 1970, going on to receive a bachelor's degree in electronic engineering from Sogang University in 1974. She also briefly studied at the University of Grenoble, but left France following the death of her mother.

Park received honorary doctoral degrees from the Chinese Culture University, in Taiwan in 1987; Pukyong National University and KAIST in 2008; and Sogang University in 2010.

 

Tenure as First Lady

Park's mother was assassinated in the National Theater of Korea, Seoul, by Mun Se-gwang, a Japanese-born North Korean assassin, and a member of the General Association of Korean Residents in Japan, under the direction of the North Korean government on 15 August 1974. She was regarded as first lady until 1979 when her father was also assassinated–by his own intelligence chief, Kim Jae-gyu, on 26 October 1979. During this time, activists who were political opponents of her father, claimed to be subject to arbitrary detention. Further, human rights were considered subordinate to economic development. In 2007 Park expressed regret at the treatment of activists during this period.

 

Political career - Head of Saenuri Party

As a response to the dwindling approval rating of the GNP, the party formed an emergency committee and changed the name of the political party from the Grand National Party to the Saenuri Party, meaning "New Frontier" Party. On 19 December 2011, Park was appointed as the chairwoman of GNP's Emergency Committee, the de facto leader of the party.

 

2012 parliamentary election

The Saenuri Party achieved a surprise win against the opposing Democratic United Party in the 2012 General Election, winning 152 seats and retaining its majority position. Because of the corruption scandals of the Lee administration revealed before the election, the Saenuri Party was widely expected to win no more than 100 seats. During the 13-day campaign period, Park traveled about 7200 km around South Korea, visiting more than 100 constituencies. It is the consensus of Korean news media and political experts that the most important factor which led to Saenuri Party's victory was Park's leadership. For this reason, the 2012 election was often dubbed the "return of the Queen of Election". Saenuri's defeat in the populous Seoul metropolitan area in this election, however, revealed the limitation of Park's political influence.

 

2012 presidential campaign

Park has been the leading candidate for the 2012 presidential election in every national-level poll in South Korea between 2008, when Lee Myung-bak administration began, and September 2011, with an approval rating of 25% to 45%, more than twice that of the second candidate. Park's approval rating was highest when 2008 National Assembly election showed her strong influence and lowest in early 2010 as a result of her political stance against Lee administration in Sejong City issue. In September 2011, Ahn Cheol-soo, a former venture IT businessman and the Dean of Graduate School of Convergence Science and Technology at Seoul National University, emerged as a strong independent candidate for presidency. In national-level presidential polls in September 2011, Ahn and Park Geun Hye closely competed for the status of front-runner, with Park losing the top seat in some polls for first time since 2008.

After her victory in 2012 General Election, Park's approval rating increased significantly. In a national-level survey by Mono Research in 30 August, Park was the top presidential candidate with the approval rating of 45.5% when competing with all potential candidates, and according to another recent national survey result, had a higher approval rating (50.6%) than Ahn (43.9%) in a two-way competition with him as of 11 September. On 10 July, Park formally announced her 2012 presidential bid at the Time Square, Yeongdeungpo-gu, Seoul. In this event she emphasized the right to pursue happiness, democratic economy, and customized welfare services for Korean people.

The opposing Democratic Party elected Moon Jae-in as its presidential candidate on 17 September. And Ahn announced his presidential bid on 19 September. Although still a leading candidate, in two-way competitions Park had lower approval ratings against Ahn's and against Moon's according to a 22 September national survey. She was elected as the President of the Republic of Korea on 19 December 2012 with the approval of 51.6% of Korean voters.

 

Source

 

 

February 25,2013

icon Park Geun-hye (박근혜)
icon Park Geun-hye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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