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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graphy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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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명박  이명박
 이명박
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 The tenth President of South Korea (25 February 2008 – 25 February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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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Biography

KOR: 이명박(李明博, 1941년 12월 19일 ~ )은 대한민국의 제17대 대통령이다.

일본 오사카 부에서 출생하였고 광복 직후(당시 만 3세) 귀국하여 경상북도 포항읍으로 이주했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 학생회 간부를 지냈고 박정희 정권의 한일협정에 반대하여 6·3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다. 이후 현대건설에 입사하여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에게 발탁되어 30대 초반에 이사를 지냈고 현대건설의 평사원 출신으로 1977년 현대건설 사장, 1988년 회장이 되었다. 1992년 현대건설을 떠나 정치인이 되어 14대(민주자유당 비례대표)와 15대 국회의원(서울 종로구, 1996년 5월 30일 ~ 1998년 2월 21일)과 32대 서울특별시장을 지냈다. 2007년 12월 19일 실시된 제17대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에서 대통합민주신당의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을 누르고 압도적인 표차로 당선되었다.

2008년 2월 25일, 청와대에 들어가 정식으로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인수위원회에서는 작은 정부 구축을 위해 정부 조직을 대대적으로 통폐합하는 개편안을 발표했다. 주 목표는 ‘작은 정부, 큰 시장’을 큰 뼈대로 ‘경제살리기’가 목표였다. 이명박 정부는 친서민 정책 및 실용주의와 경제 성장, 자원외교 등을 추구하였다. 하지만 집권 초기에는 한미 쇠고기 협상 논란 등에 휩싸이며 최저 7.4%의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하였다. 또한 노무현의 자살 당시에도 '검찰과 정부의 책임'이라는 비판이 나오면서 낮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집권 이후 상생과 공영의 대북 정책을 추구하였으나, 금강산 관광객 피살 사건, 천안함 사건 및 연평도 포격 사건 등으로 남북관계가 악화되기도 했다. 한편 독도 문제 등으로 일본과 마찰을 빚기도 했으며, 이에 독도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2013년 2월 24일,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으로서의 임기가 종료되어 청와대를 떠났으며, 서울특별시 강남구 논현동에 있는 사저로 거처를 옮겼다.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아호는 원래 일송(一松)이었지만 서울특별시장 시절이던 2005년 10월 26일 청계천복원시민위원회 전체 회의에 참석한 김정배 위원장의 권유에 따라 청계(淸溪)로 바꾸었다.

 

대한민국 제17대 대통령 선거

2007년 8월 20일 전당대회에서 그는 박근혜, 원희룡, 홍준표 후보와 경선을 치러 2위인 박근혜 후보를 2,452표 차이로 누르고, 한나라당의 대통령 선거 후보로 확정되었다. 당시 일반 당원, 대의원, 국민선거인단 경선에서 박근혜에게 모두 패했지만, 전화상 1표를 실제의 5표로 환산한 여론조사에서 박근혜를 앞지름으로써 승리하였다. 표의 등가성 문제와 관련하여 논란이 일었으나, 박근혜 후보가 승복함으로써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2007년 12월 제17대 대통령 선거 후보 여론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후보로 기록되었다. 드디어 2007년 12월 19일에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 각기 26%와 15%의 지지를 받은 대통합 민주신당 대표 정동영 후보와 무소속 이회창 후보를 제치고 49%의 지지를 받으며 제17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후 2008년 2월 25일 공식 취임하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최초로 CEO출신의 대통령이라는 의의도 있다.

당선 이후이자 취임 전인 2008년 2월, 숭례문 화재 현장을 둘러보기도 했다.

 

권총 협박 사건

2009년 12월 1일 이명박은 박근혜 의원에게 "나도 지난 대선 때 어느 괴한이 권총을 들고 집에까지 협박을 하러 와서 놀란 적이 있는데, 경호원들이 붙잡고 봤더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고 그냥 돌려보냈다"라고 말해 대통령 후보때 권총협박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명박의 최측근인 강승규 한나라당 의원은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이라며 "주방 아주머니가 받은 전화에 '탕탕탕' 총소리를 내며 협박을 한 것" 이라며 이명박의 진술이 과장되었다고 주장해 문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이명박의 발언과는 너무나 큰 차이가 있어 별개의 사건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박선영 자유선진당 대변인은 "거짓말이 아니라면 분명 또 다른 권총 협박사건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권총의 행방을 추적해야 한다. 협박범으로부터 권총을 압수했다면 경찰에 신고도 하지 않았으므로 불법 무기소지죄에 해당하는 것이고, 권총을 압수하지 않았다면 추후범행을 방조한 결과가 된다"며 권총협박사건의 진실을 가려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2009년 12월 4일 브리핑을 통해 자유선진당 박선영 대변인이 이명박 대통령의 '권총 협박' 발언을 날조된 거짓말이라고 비판한 데 대해 유감을 표시하며 사과를 공식 요구했다.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은 "박 대변인이 사실에 근거하지 않은 떠도는 이야기를 확인도 거치지 않은 채 논평을 낸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공당 대변인의 도리가 아니며, 사과해야 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대통령 취임 이후 - 취임식

2008년 2월 25일에 취임식이 ‘함께 가요, 국민성공시대!’ 라는 표어를 내걸고 국회의사당에서 열렸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식 엠블럼의 명칭은 태평고(太平鼓)로, 이는 태평소와 북을 모티브로 삼아 만든 것이며 한국의 태평성대를 염원하는 희망의 울림소리가 온 세상에 뻗어나가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것이다. 태평소는 음색이 매우 강하고 높을 뿐만 아니라 세상을 두루 편안하게 해준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고, 북은 가장 힘차고 박진감 넘치며 전진을 상징하는 악기라는 점에서 모티브로 채택했다고 한다.[73] 취임식에는 관련 인사는 물론 전체 4만 5000명의 참석자 중 2만 5000명을 일반 시민에게 신청을 받아 배정하였다. 또한 푸른색 바탕에 동아시아 지도와 태극기 그리고 노트북 컴퓨터를 든 그의 모습이 함께 그려진 취임 기념 우표를 발행하기도 하였다.

 

지지율

투표자 중 반수에 가까운 득표로 대통령에 당선된 이후 이명박은 불도저라는 자신의 이미지대로 인재를 뽑고 정책을 추진하였다. 또한 50여개 품목의 물가 안정, 일찍 출근하고 늦게까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상 정립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정책 조율 등의 미숙함 등으로 말미암아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한편, 이명박 정부는 여러 가지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세계적인 유가급등과 또한 기획재정부의 환율정책으로 말미암은 환율상승 등 대내외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물가가 급상승한 것과, 한미 FTA 협상 중 가장 민감한 현안인 미국산 쇠고기 수입재개를 위한 협상과정에서 2008년 4월 18일에 캠프 데이비드를 방문해 조지 W. 부시 대통령과 협상하며 제시한 조건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의 반발이 커졌다. 이는 촛불 집회나 문화 집회 등으로 번져 갔는데, 이러한 집회들을 경찰이 진압하자 이명박의 지지율은 한때 7%를 기록하였다. 6월 말에 지지율 회복을 보이면서 강경 대응으로 선회했었다는 의견이 있었다.

2008년 9월 한나라당에서 조사된 지지율에서는 25.6%로, 10월에는 23.9%로 조사되었다. 12월 16일에 조사된 지지율은 35.8%로, 2009년 1월 31일 조사된 지지율은 34.8%에 이르고 있다. 다만, 이런 지지율 상승 현상은 보수층의 결집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2009년 5월 23일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을 전후로 지지율이 다시 20%대로 내려간 상황이나 2009년 8월에는 31.4%로 지지율이 상승하였는데 이념적으로는 중도층에서 지지율이 8.9%p 올랐고 계층별로는 중산층에서 4%p 올랐다. 이는 정부의 고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및 국립현충원 안장 결정과 북한 조문단과의 회담 이후 경색된 남·북 관계 회복에 대한 기대감 등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이후 2009년 8~9월 지지율을 살펴보면 보수를 대표하는 신문은 50%,. 진보를 대표하는 신문 등은 3~40%의 지지율을 나타내고 있다고 보도하였다. 2010년 1월 4일 지지율 조사에 따르면 56.7%(매우 잘하고 있다 11.0%, 대체로 잘하고 있다 45.7%)로 나타났다.

2010년 서울 G20 정상회의가 준비하는 동안 지지율이 53%으로 높아졌다.

2010년 말 지지율이 50%를 웃돌았으나, 바닥 민심과는 차이가 크다는 지적을 야당뿐 아니라 여당에서도 하였다. 그 원인으로는 표본의 적정성 문제, 10%대의 낮은 응답률 등을 제시하였다. 한편 그에 대해 여론조사 기관에서는 조사비용을 낮게 책정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여당에서는 각자 자신들에게 유리한 시기에 조사하거나, 유리한 계층을 대상으로 조사하기 때문으로 풀이하였다.

한편, 여론 조사기관인 한국리서치가 2년여 동안 조사한 결과를 보면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꾸준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어 집권 초반 강세를 보이다가 집권 후반 약세를 보이는 역대 대통령들과는 상반된 추이를 나타내었다.

그러나 아산정책연구원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도의 자료는 RDD (Random Digit Dialing) 방식을 사용하여 지지도가 왜곡되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대통령과의 대화

대통령 당선 이후 2번에 걸쳐 ‘대통령과의 대화’ 라는 TV 프로그램에 출연하였다. 이를 통해 국민들에게 국정을 설명하고, 국민들의 의견을 국정에 반영하려 하였다.

 

출처

 

 

ENG: Lee Myung-bak (born 19 December 1941) was the tenth President of South Korea. Prior to his presidency, he was the CEO of Hyundai Engineering and Construction and the mayor of Seoul. He is married to Kim Yoon-ok and has three daughters and one son. His older brother is Lee Sang-deuk, a South Korean politician. He attends the Somang Presbyterian Church. Lee is a graduate of Korea University and also received an honorary degree from Paris Diderot University on May 13, 2011.

Lee altered the South Korean government's approach to North Korea, preferring a more hardline strategy in the wake of increased provocation from the North, but is also supportive of regional dialogue with Russia, China and Japan. Under Lee, South Korea has been increasing its visibility and influence in the global scene, resulting in the hosting of the 2010 G-20 Seoul summit. However, there remains significant controversy in Korea in regards to high profile government initiatives which have caused some factions to engage in civil opposition and protests against the incumbent government and President Lee's Saenuri Party (formerly the Grand National Party). The reformist faction within the Saenuri Party is at odds against Lee Myung-bak. He end his five-year term on February 25, 2013, and succeeded by Park Geun-hye.

 

Early life and education

Lee Myung-bak was born on December 19, 1941, in Osaka, Japan; his parents had emigrated to Japan in 1929, nineteen years after the Japanese annexation of Korea. Lee's father, Lee Chung-u (이충우; 李忠雨), was employed as a farm hand on a cattle ranch in Japan, and his mother, Chae Taewon (채태원; 蔡太元), was a housewife. He was the fifth of his parents' four sons and three daughters.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in 1945, his family returned to his father's hometown of Pohang, in Gyeongsangbuk-do on the American-occupied Korean Peninsula. Lee's sister, Lee Ki-sun, made it known that they smuggled themselves into the country in order to avoid the property they acquired in Japan being confiscated by the officials. However, because the ship they took was wrecked off the coast of Tsushima island, they lost all their belongings after all and the family barely survived.

Lee attended night school at Dongji Commercial High School in Pohang, at the time he received a scholarship. A year after graduation, Lee gained admission to Korea University. In 1964, during his third year in college, Lee was elected president of the student council. That year, Lee participated in student demonstrations against President Park Chung-hee's Seoul-Tokyo Talks taking issue with Japanese restitution for the colonization of the Korean peninsula. He was charged with plotting insurrection and was sentenced to five years' probation and three years of imprisonment by the Supreme Court of Korea. He served a little under three months of his term, at the Seodaemun prison in Seoul.

In his autobiography Lee writes that he was dismissed from Korea's mandatory military service due to a diagnosis of acute bronchiectasis while at the Nonsan Training Facility.

 

Presidential election

On May 10, 2007, Lee officially declared his intention to run for the Grand National Party as its presidential candidate. On August 20, 2007, he defeated Park Geun-hye in the GNP's primary to become its nominee for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During the primary, Lee was accused of profiting from illegal speculation on land owned in Dogok-dong, an expensive ward in Seoul. However, on August 2007, the prosecutors said in the interim announcement that "We do suspect Lee's brother's claim over the land in Dogok-dong, but have failed to verify the real owner of the asset". On September 28, 2007, the prosecutory authority officially dropped the suspicion that the Dogok land is under a borrowed-name announcing that "We have done all necessary investigations including tracing the proceeds from the sale of the land and call history and now got to the bottom of this case." In December 2007, a few days before the Presidential election, Lee announced that he would donate all of his assets to society.

His stated goals were expressed in the "747 Plan" and included: 7% annual growth in GDP, $40,000 USD per capita, and making Korea the world's seventh largest economy. An important part of his platform was the Grand Korean Waterway (한반도 대운하) project from Busan to Seoul, which he believes will lead to an economic revival. His political opponents criticized that the project was unrealistic and too costly to be realized. Others were concerned of possible negative environmental impact.

Signaling a departure from his previous views on North Korea, Lee announced a plan to "engage" North Korea through investment. Lee promised to form a consultative body with the North to discuss furthering economic ties. The body would have subcommittees on the economy, education, finance, infrastructure and welfare, and a cooperation fund of $40 billion. He promised to seek a Korean Economic Community agreement to establish the legal and systemic framework for any projects emerging from the negotiations. Lee also called for forming an aid office in North Korea as a way of decoupling humanitarian aid from nuclear talks.

His foreign policy initiative was called MB Doctrine, which advocates "engaging" North Korea and strengthening the US-Korean alliance.

 

BBK scandal and Kim Kyung-joon

During the 2007 presidential election, questions about his relationship with a company called BBK were raised. In 1999, Lee is alleged to have met Kim Kyung-joon and established the LKE Bank with Kim Kyung-joon. However, this enterprise went bankrupt less than a year later and 5,500 investors lost substantial amounts of money. BBK co-founder Kim Kyung-joon was investigated for large-scale embezzlement and stock price-fixing schemes. Kim Kyung-joon had initially stated that Lee was not involved with the company, and Lee himself denied being associated with BBK. Kim Kyung-joon and his wife attempted to implicate Lee Myung-Bak in criminal involvement which was not supported by evidence. Eventually, Kim Kyung-joon admitted publicly sole responsibility and making false and misleading statements in an attempt to implicate Lee. Lee was declared innocent of all charges by the Supreme Court of Korea.

However, controversy remains as fellow GNP lawmaker Won Hee-ryong recommended a reinvestigation of the BBK scandal following the arrest of Jung Bong-ju.

 

Presidency

In spite of the lowest voter turnout ever for a presidential election in South Korea, Lee won the presidential election in December 2007 with 48.7% of the vote which was considered to be a landslide. He took the oath of office February 25, 2008, vowing to revitalize the economy, strengthen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and "deal with" North Korea. Specifically, Lee declared that he would pursue a campaign of “global diplomacy” and seek further cooperative exchanges with regional neighbors Japan, China, and Russia. Furthermore, he pledged to strengthen South Korea–United States relations and implement a tougher policy with regards to North Korea, ideas that are promoted as the MB Doctrine.

Lee stated that he wanted to restore better relations with the United States through a greater emphasis on free market solutions.

Two months after his inauguration, Lee's approval ratings stood at 28%, and by June 2008 they had reached 17%. Bush and Lee also discussed the ratification of the South Korea–United States Free Trade Agreement or KORUS FTA, which faces opposition from legislators in both countries. While it was expected that Lee's agreement during the summit to partially lift the ban on US beef imports would remove the obstacles in approving the KORUS FTA in the US, many Koreans protested the resumption of U.S. beef imports.

As protests escalated, the Korean government issued a statement warning that violent protesters would be punished and measures would be taken to stop clashes between police and protesters. The protest continued for more than two months and the original purpose of the candlelight vigils against U.S. beef imports has been replaced by others, such as opposition to the privatization of public companies, education policy, construction of the Canal. The damages caused by protesters to the businesses around the demonstration and the social cost reached approximately 3,751,300,000,000 won.

ccording to The Wall Street Journal, Lee's plan to privatize public companies was a modest but "perhaps important step" toward reform.

As the government gained more stability, the approval rating of Lee's administration rose to 32.8%. Since the resumption of U.S. beef imports, more people are buying U.S. beef and now it has the second largest market share in Korea, after Australian beef.

Lee's approval ratings have reflected public perception of Korea's economic situation in the wake of the global economic meltdown. Signs of a strengthening economy and a landmark $40 billion deal won by a Korean consortium to build nuclear power plants in the United Arab Emirates have boosted Lee's popularity. His approval rating in January 2010 stood at 51.6%. However, Lee's popularity fell sharply through the last year of his presidency, with his approval rating at approximately 20% in May 2012.

Former president, Kim Young-sam had expressed negative outlooks on Lee Myung-bak's role as the president and his influence between South Korea and Japan according to a Wikileaks file. As of late 2011, Lee's administration has had a series of corruption allegations surrounding certain high ranking government employees.

 

Source

 

 

February 27,2013

icon Lee Myung-bak (이명박)
icon Lee Myung-bak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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